The Conqueror
미하엘 슈마허, F1 7회 세계 챔피언
미하엘 슈마허, F1 7회 세계 챔피언
그는 생애 통상 249차례 F1 그랑프리에 출전해서 91승을 거뒀다.
그가 올린 포인트는 1천 369점.
그는 F1 세계 챔피언에 일곱 차례 올랐다.
그가 한창 서킷을 누빌 때 그는 그 모든 일을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해냈다.
물론, 다른 레이서들에게 그의 행동이 용서할 수 없이 비겁해 보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남긴 것은 이제껏 그 어떤 레이서들도 도달할 수 없었던 경지였다.
그는 휠과 타이어, 엔진을 총동원해 놀랍고도 완벽한 마술을 보여 주었다.
조금은 건방져 보이는 게르만족 특유의 주걱턱에 소심한 성격,
그리고 아일톤 세나가 숨졌을 때 보여준 썩 세련되지 못한 행동…
하지만, 어찌됐건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였다.
왜 그를 이토록 추켜세우는지 궁금하다면 마지막 경기가 된 지난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그가 보여 준 빛나는 경기 운영을 상기하기 바란다.
물론 이론의 여지는 있을 수 있겠지만 모터스포츠의 역사상 가장 완벽한 경기 중 하나로
꼽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에게는 F1 머신에서 보낸 16년의 매초, 모든 랩이 짜릿한 순간이었다.
그는 언제나 스타트할 때와 똑같이 경기를 마쳤다.
라이벌들은 그의 머신 꽁무니만 바라볼 뿐.
그는 서킷을 떠났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그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게 될지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 이탈리아 몬자 서킷, 2006년 10월 29일 -
모터스포츠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심지어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미하엘슈마허'라는 이름은
꽤 익숙할 것이다.
그가 어떤 성과를 얼마나 올린 정확히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그 이름만은 대중에 익숙한
레이싱계의 대명사가 아닐까?
69년 1월생.
이미 5살의 나이에 어린이 자동차 경주에 나가 좀 더 성숙한 아이들을 따돌리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1살 무렵 당시 최고의 카레이서 아일톤 세나의 경기를 관전하며 깊은 감명을 받게된다.
이 후 각종 경기를 거쳐 승승장구 하던 그는 26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시즌 챔피언에 올랐으며 이듬해 당당 2연패로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팬들로 하여금 3연패까지 기대하게 했던 그는 다음해 대회에서 3연패 트로피 대신 부진한 성적과 더욱이 다리골절이라는 치명상까지 입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 99년, 말레이시아 F1 그랑프리에서 재기의 가능성을 예고하였으며,
2년 후 다시 그는 부활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기록은 그에게 스포츠 스타 중 최고의 연봉을 받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으며 비록 자녀에겐 구두쇠 아빠이지만 그 많은 수입의 일부는 각종 기부문화에 참여하며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바람직한 선행을 보이기도 하였다.
2006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럭키세븐의 세계챔피언을 이룩한 그는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하였다.
영화에도 진출 아스테릭스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인 ‘아스테릭스 앳 더 올림픽게임(Asterix at the Olympic games)’에 기수역할로 특별출연, 카레이서가 아닌 또 다른 모습으로 오랜만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최연소라는 온갖 타이틀과 스포츠 재벌이라는 가쉽과 열광의 외줄타기 속에서 유명세로 인한 양면성에도 이렇다 할 스캔들이 없이 아직까지 모범적인 생활을 잘 꾸려가고 있는 미하엘 슈마허 그는 불혹의 나이에 이미 모터스포츠계에 한 획을 그으며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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